허**영님께서 작성하신 후기입니다.
필리핀 코론에서 시작된 작은 용기, 그리고 다시 만난 제주 바다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설레는 일이었다. 게다가 10월이면 스무 살이 되는 손자 **빈이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더욱 특별했다. 아들 내외의 응원을 받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 가방을 꾸렸다.
우리의 목적지는 필리핀 팔라완의 코론.
투명한 바다와 아름다운 섬, 호수와 산호초가 어우러진 곳에서 며칠 푹 쉬고, 실컷 물놀이를 즐기는 것. 이번 여행의 계획은 그 정도였다.
제주에서 부산을 거쳐 세부로, 다시 부수앙가 공항에 도착했다. 코론에서의 첫날은 마퀴니 온천에서 따뜻한 온천욕을 즐기며 노을을 바라보는 것으로 여유롭게 시작했다.
그리고 둘째 날부터 본격적으로 코론의 바다를 만났다.
키양안 호수와 바라쿠다 호수, 트윈 라군을 차례로 둘러보며 스노클링과 카약을 즐겼다. 산과 절벽이 바닷속까지 이어지는 듯한 풍경, 햇빛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 에메랄드빛 물빛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그런데 나에게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일이 있었다.
사실 나는 어릴 적 물에 여러 번 빠졌던 기억 때문에 물을 조금 무서워하는 편이다. 바다를 좋아하면서도 직접 물속에 들어가는 일에는 늘 조심스러웠다.
그런 내가 사흘 동안 배를 타고 섬과 섬 사이를 오가며 수없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처음에는 망설이기도 했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물고기들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하나씩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물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여행이 주는 작은 변화였다.
셋째 날에는 말카푸야섬과 코코비치, 디타이타안 샌드바를 찾았다. 하얀 모래톱을 걸으며 발끝으로 바다를 느끼고, 맹그로브와 코코넛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작은 섬에 모이면 선장님이 아침 시장에서 직접 준비해 온 새우와 생선, 망고와 채소로 맛있는 점심을 차려주셨다.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에서 함께 둘러앉아 먹는 점심은 그 자체로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은 섬을 떠날 때였다.
가이드와 선장님은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에 쓰레기가 남아 있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살피고 깨끗하게 정리한 뒤 배에 올랐다.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는 것만큼 자연을 지키는 것도 여행의 일부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사흘 동안 코론의 바다를 마음껏 즐기고, 호텔에서는 느긋하게 쉬며 여행의 여유도 충분히 누렸다.
나는 제주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그동안 바다는 주로 ‘보는 것’에 익숙했다. 해안도로를 달리고, 바닷가를 걷고, 예쁜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정도였다. 집을 나서 10여 분이면 바다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런데 코론에서는 달랐다.
바다에 직접 들어가고, 물고기들과 함께 물속을 헤엄치고, 카약을 타고, 배를 타고 섬과 섬 사이를 오갔다.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만났다.
그러고 나니 바다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두려움도 조금씩 넘어설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손자 **빈이와 함께 새로운 경험을 나누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좋았다.
어쩌면 여행의 가장 좋은 선물은 여행지에서만 얻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익숙한 곳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것.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미처 몰랐던 풍경을 다시 발견하는 것.
코론은 내게 그런 여행이었다.
코론에서 시작된 작은 용기가 다시 제주에서 새로운 여행으로 이어지기를.
그리고 언젠가 또 **빈이와 함께 제주 바다에 들어가 오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